<8>

     민타오름



여름 아래 당신의 등짝에는

폭력과 진취가 한 아름 젖어 있다

사라질 것처럼 호흡하는 눈망울

날 왜 그렇게 봐?


있잖아, 나는

떠날 수 있다면 어디로든 가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삶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뜨거운 계절이면

머쓱히 웃고 마는 인류의 버릇

길게 자란 당신 손톱이 피곤하다

기온이 한 떨기씩 하강할 때면

당신 또한 낙하할까 두려워


너는 아지랑이처럼 걷고 있다

계절이 끝나도 바다 한 번 가보지 못할,

가난하고 쓰라린 상처들이

피부마다 배어 버려

남들 다 입는 짧은 소매마저 사치라는 인생


여름 아래 당신의 등짝에는

폭력과 진취가 한 아름 젖어 있다

<17세의 회고록>

                                  민타오름



    심해어도 아니고 왜 내가 사는 곳은 이처럼 지독한 어둠이야 어째서 내 방 벽지는 염전처럼 짭짤해 난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데 기회는 오지 않고 문득 열아홉 언저리에 소년범 따위가 되어 버릴까 봐 겁나


    일조권 박탈당한 삶이 원래 이리 퀴퀴한가 창조주의 존재는 누구를 위한 위헌이지 임대한 숨통을 꽉 쥔 채로 판결을 기다려 오지 않는 차례는 마치 통증이다 나이 일곱에 눈물샘을 거세하고 십 년이 흘렀어 여전히 피라미 같은 나날들이 이어지지 난생 망명해야만 했던 운명 필히 묘시에 태어나서 토끼처럼 뜀박질을 해야 죽지 않는 거야 몇 분을 일찍 태어났거나 몇 시간을 늦게 태어났다면 행복에 빌어먹으며 살고 있었을까


    실패한 혁명이 혈관 안 녹아 있다 난 말이야 나의 시린 탄생을 기억해 담벼락 위 늘어져 졸던 고양이가 부러워 가로등 아래 꺽꺽댔던 월요일 또한 기억해 용서는 복수가 아니고 용서는 용기가 아님을 퍽 일찍 깨달아 버렸다 모든 것은 오점에서 원점으로, 자괴에서 소멸로, 매질을 피해 달려야만 했던 막막한 새벽 길목에서 베란다로, 그렇게 점차 천천히 점차 내 안으로

<불멸>

         민타오름



젖은 속눈썹을 원하는 지구인은 더는 없다

잊혀야만 옳은 짙음들을 락스 물에 담그고서

남자는 맨손으로 빨래를 시작한다


억겁이 흘러도 하얘질 수 없는 존재가 있다

손톱 밑에 스민 탈취제의 향기처럼

자주 사용한 것들은 더욱이 닳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남자에게 사라진

그림자의 거취나 안부 따위를 묻고는 한다

철학자들에게 선량은 사악이었듯


구정물 위로 떨어지는 살얼음

공간 밖의 세상은 벌써 1월이라는데

남자의 새해는 우체통 가득 밀려 있다


남겨진 옷가지 하나씩 깨끗하게 세탁해

소파 위에 널고 나면 그것으로 하루 일과는

괴로워서 괴로웠던 하루 일과는 끝이 난다


매년 펼쳐 보던 앨범을 올해는 보지 않았다

매일 돌아오는 오후 네 시면 기도를 했다


그대라고 불렀던 것들은 아마도 불멸인가 한다

<애-벌레>

              민타오름



벌레처럼 기어서 갈게요

나는 네가 방학을 즐겁게 보냈길 바랐지만 전혀 그런 기색은 없었다 다만 떠나겠다는 말에 벌레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을 뿐

좀먹은 기억의 끝에 우리는 어떤 나프탈렌을 복용하며 살고 있을까

지난여름 너는 너무 많은 것을 봤다고 했다 게거품을 물고 발작하기 충분한 그런 것들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만큼 노력해야 할까요

세포 때부터 지닐 수 있던 이들은 저와 다른 종족일까요

가족이란 애석히도 소멸하기 위해 결합되는 걸까요

벌레처럼 기어서 갈게요 누군가 저를 발견하였다가

냉큼 콱 밟아 버릴 수 있도록요


소녀야

다정한 것들은 간밤 날아가 버린다

네가 사모한 이들은 모두 나쁜 어른뿐

<x에 대하여>

                 민타오름



불행은 혈액이었다

끝도 없이 생겨났다

<병명>

          민타오름



죽은 것들을 너무 많이 사랑했어요

세기가 지나 버린 낡은 체크무늬 코트와

며칠 전 흩뿌려진 공중의 습기

도식화된 새벽과 메마른 생장점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곧바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져요

사람들이 저를 죽이려고 해요

사실 아무도 그러지는 않는데

저는 그렇게 느껴요 선생님

사무치게 서러워서 눈물이 나요

그러다 그냥 있어요

우주에서도 느끼지 못할 공허가

제 옆구리에 종양처럼 붙어 커져요

기다리지만 뭘 기다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저를 몰라요


저는요

죽지 않은 사람의 기일을 챙기는 법에 대해 알아요

에어컨디셔너 밑에서 조용하고 냉혈하게 죽어 가요

민물고기처럼 아가미를 한껏 벌리고 헐떡이지만

이게 제 인생의 전부라는 걸 인정하고 있어요


그 단어를 쓰지 않고 진단 내려 주세요

눈 감으면 다음 아침까지 백만 년이 걸릴 거라고

두 번은 태어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Copyright2019.

어거스트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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